수년간 잊고 산 감각 깨우는 무대

전성민 기자() | Posted : June 8, 2022, 07:00 | Updated : June 8, 2022, 07:00
 

연극 ‘소프루’ 중 한장면 [사진=국립극장]


코로나19로 수년간 하늘길이 좁아지면서, 해외초청작을 볼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예정됐던 내한 공연은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외 코로나 상황 때문에 줄줄이 취소됐다.
 
국내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가운데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터널의 끝이 점점 보이고 있다. 외국 여행처럼 해외 공연도 조금씩 일상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 제41회 국제현대무용제 문 활짝 연 샤론 에얄 작품
 
“순간. 고요. 건조함. 공허. 두려움. 전체. 은폐. 갈망. 검은색. 달. 물. 모서리. 냄새. 악마. 틈새. 추위. 눈. 의도. 충동. 겹. 은신처. 색깔. 리스. 소금. 거대한. 옆. 스티치. 사랑. 점.”
 
세계적인 안무가 샤론 에얄(이스라엘)은 ‘챕터3: 더 브루털 저니 오브 더 하트’ 공연을 안내하는 프로그램 책에 단어 29개를 적었다.
 
직접 작품을 보니 그가 왜 단어만 적어놨는지 이해가 됐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무대였다. 그저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국-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맞아 에얄과 가이 베하르가 제41회 국제현대무용제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챕터3: 더 브루털 저니 오브 더 하트’ ⓒStefan Dotter for Dior [사진=모다페]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협회가 주최하는 ‘MODAFE 2022 제41회 국제현대무용제(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 2022·이하 MODAFE 2022)’가 오는 6월 1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및 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및 소극장 드림에서 개최된다.
 
국제현대무용제는 전 세계 현대무용의 흐름을 주도하는 세계 최고의 현대무용단과 안무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를 대표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현대무용축제이다. ‘한국 현대무용향연’의 이름으로 시작된 MODAFE는 1988년을 기점으로 ‘국제현대무용제’로 명칭을 변경하여 국제적인 축제로 그 의미를 더욱 확장했다.
 
올해에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해외 초청작이 개막작으로 무대에 올라 더욱 뜻깊었다.
 
에얄이 안무를 한 ‘챕터3: 더 브루털 저니 오브 더 하트’가 지난 6월 3일과 4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에얄은 예루살렘 태생으로 1990년에서 2008년까지 바체바 댄스컴퍼니에서 무용수로 활동했고, 무용단의 바체바 댄서 크리에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안무를 시작했다.
 
그녀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바체바 댄스컴퍼니의 부 예술감독,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무용단의 상임 안무가를 역임했다. 2013년 에얄은 그녀의 오랜 협력자인 비하르와 함께 ‘L-E-V’를 설립했다.
 
55분간 공연된 ‘챕터3: 더 브루털 저니 오브 더 하트’는 가슴을 뛰게 하는 공연이었다.
 
무용수들의 일관되면서 자유로운 움직임은 관객의 시선을 줄곧 사로잡았다. 무대를 보면서 계속 상상하게 했다. 힘이 넘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현대무용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줬다.
 
​6년 만에 국제현대무용제에서 에얄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해준 모다페 조직위원장은 지난 31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맞아 많은 분이 도움을 줘 개막작으로 ‘챕터3: 더 브루털 저니 오브 더 하트’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티아구 호드리게스 연출 [사진=국립극장]

 
◆포르투갈의 젊은 거장 호드리게스 연출 연극 ‘소프루’
 
국립극장은 오는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티아구 호드리게스 연출의 연극 ‘소프루(Sopro)’를 서울 중구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차기 예술감독으로 선정되며 세계가 주목하는 연출가임을 입증한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프루’는 호드리게스의 대표작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등을 일러주는 ‘프롬프터(Prompter)’의 존재에 빗대어 극장과 무대 뒤 수많은 삶, 나아가 잊혀 가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포르투갈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이 제작해 2017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이후 파리가을축제‧더블린축제‧빈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와 유수의 극장에서 꾸준히 공연됐다.
 
‘소프루’는 포르투갈어로 ‘숨‧호흡’을 뜻한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극장이라는 공간에 깃든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40년 넘게 포르투갈에서 현역 프롬프터로 살아 온 크리스티나 비달을 무대에 등장시킨다.
 
프롬프터 박스나 무대 옆에서 나와 처음으로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극장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작품은 크리스티나 개인의 이야기와 몰리에르, 장 라신, 안톤 체호프 등 유럽 고전 희곡의 서사가 교차하며 허구와 실재, 연극과 현실이 경계를 허물고 서로 스며든다.
 
‘소프루’를 연출한 호드리게스는 40대 중반의 젊은 거장이다. 배우로 연극 활동을 처음 시작한 후, 작가이자 연출가로 활약하며 포르투갈 연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2003년 공동 창단한 극단 ‘문두 페르파이투’의 작품이 세계무대에 초청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5년부터 2021년까지 포르투갈의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아 연극을 통한 도시와 국가 간 가교 역할에 앞장서 왔으며,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과 시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전 세계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았다.
 
호드리게스는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를 통해 극장의 가려진 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라며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누구나 목소리를 내고 ‘나’에 대해 말하는 시대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 드러나지 않은 채 타인을 위해 일하며 행복과 의미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관객에게 다소 낯선 포르투갈 예술과 연극의 진면모를 확인할 기회다.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포르투갈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6월 18일 공연 종료 후에는 크리스티나 비달 등 출연 배우가 무대에 올라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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