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안혜연 이사장 "투자자는 '다양성'으로 조직 성과·리스크 본다"

임민철 기자() | Posted : Febuary 23, 2022, 00:10 | Updated : Febuary 23, 2022, 16:08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과학·공학 전문성을 보유한 여성 기술인재 양성과 활용이 국가적 디지털 인재대란을 극복할 전략일 뿐 아니라 기업의 다양성을 높여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으로 지목됐다. 정부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정책을 실행하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의 안혜연 이사장이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메시지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Q.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법 제정 20주년의 의미는.

"제정 당시 시대로 보면 대단하고 빠른 시작이었지만 이후 성과와 사회변화를 함께 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여성과학기술인 관련 이슈와 무관하게 최근 사회 변화는 엄청나게 빠르다. 20년 전 이 법이 만들어졌을 때의 환경·상황은 지금과 굉장히 다르다. 처음 10년동안은 법에 기반한 정책이 잘 통했지만 그 후 10년의 변화에 비해서는 늦은 감도 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정책과 집행해야 할 사업은 크게 바뀌어야 한다. 현행 사업의 바탕인 4차 여성과기인 기본계획(2019~2023)의 성격은 여성 석·박사들이 자기 공부한 분야에서 정규직으로 취업을 못하는 국가적 낭비 때문에 만들어진 여성과기인법의 기존 틀을 이어 온 부분이 많다."

Q. 여성과기인 육성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주니어 시절부터 어떤 모임을 가든 여성이 나 혼자였다.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그랬다. 남성들에게는 저를 배척하겠다는 뜻이 없어도 어색하고 불편해 했다. 서로 어려워하는 것인데, 같이 일을 하기 위해 제가 편해지고 익숙해져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말하곤 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보다는 그게 잘 되게끔 지원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간의 정책에 대한 생각이다. 이제 다양성이 비즈니스 성과에 여러모로 좋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을 끼워주자'는 식이 아니라 '조직에 여성이 들어와 조직적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개선되고 발전한다'는 인식이 자리잡도록 바뀌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성이 늘어날 때 어떤 성과가 나온다, 이런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도 이런 연구를 해야 한다. 발빠른 글로벌 투자자들은 조직과 회사에 투자할 때 다양성을 본다. 그게 리스크를 줄이고 성과를 보장하는 데 기여한다는 기대 때문이다."

Q. 여성과기인의 생애주기 중 지원이 더 필요한 시기는.

"똑똑한 초·중·고교 여학생들이 공학 분야로 더 많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아직 부족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산업계 지인 남성분들을 만나면서 '딸과 엄마를 동시에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몇 번 받았다. 자녀가 IT나 소프트웨어 쪽으로 공부했으면 좋겠는데, 딸에게 영향력이 큰 엄마가 동조를 잘 하지 않으니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처럼 여학생들을 공학 분야로 이끄는 프로그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고 꾸준히 만들어 갈 예정이다. 반대편 끝에 있는 여성 시니어 인재를 활용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여성 시니어의 은퇴가 남성보다 빠른 편이라 필드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가 후배를 돕고, 후배가 성장해 시니어가 되는 순환이 이뤄지면 좋겠다."

Q. 해외에서도 정부 주도 여성인재 지원이 활발한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경우 민간이 주도하고 협회·단체에서 진행하는 문화적인 토양이 탄탄하다. 중국도 이미 딴 세상이다. 산업계에서 중국 사람들과 일해보면 여자, 남자 구분 없고 고위층에 여자들이 많았다. 중국은 과거 유교문화에서 탈피한 게 아닌가 싶다. 유교문화권인 한국과 일본이 민간 차원에서 (여성인재 지원·육성을) 좀 못하는 편이라 정부 주도적으로 하는데, 일본은 그나마 잘 안 되고 있다.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은 우리보다 전반적인 상황이 훨씬 낫다. 기술력이 낮을 뿐, 사회·경제활동 인구의 여성 비중이 한국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처럼 GDP나 기술수준이 높은데도 여성인재 활용률이 떨어지는 모습을 유엔에서도 신기하게 여기고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문화가 바뀌는 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에, 이에 발맞출 수 있는 정책 등을 고민해야 할 때다."

Q.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여성인재 육성을 위해 기업과 연계하고 있는데.

"(산업계의 여성인재 육성 지원은) 글로벌 업계에서 보편적이다. 기업 차원에서 STEM 분야 인력 확보에, 더해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여성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숙제가 있기 때문이다. 멀티캠퍼스는 재직자 대상 프로그램을 사회공헌(CSR) 차원에서 연간 500~600명 규모로 무료 수강할 수 있게 했고, 인텔과 KT 등이 인공지능(AI) 등 기술교육 강사 양성과정을 만들고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체에서 선발한 여학생을 대상으로 6개월 이상 부장·임원급 여성들이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글로벌 멘토링' 사업을 운영해 왔다. 글로벌 기업의 본사에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만들면서 연계 기업이 2~3곳에서 10곳 이상으로 늘었다. 글로벌 기업 연계는 계속 느는데, 아쉽게도 한국에는 한 곳도 없었다가 KT가 드디어 국내 최초로 작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결정했다. 올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KT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Q.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여성인재의 활용 방안은.

"모든 언론에서 디지털산업 인재 부족을 얘기하는데, 통계적으로 이미 남성들의 60% 정도가 그 분야에 종사한다. 개인의 성향이 있는데 남성의 종사자 비율을 80~90%로 만들 수 있겠나. 대학에서 이공계 전공 여성은 20% 정도고 산업현장에도 많아야 20%, 적게는 10%대에 불과하다. 이 비율만 높여도 부족한 인재를 많이 보충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려는 여성인재, 경력복귀 의지가 있는 여성인재를 활용해야 한다. 과학기술 기반을 갖고 있는 경력단절여성들은 기존 전문분야로 복귀하지 않더라도, 초·중·고교 IT분야 강사로 양성돼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디지털 취약계층을 지원해 디지털격차를 완화하는 인력이 될 수도 있다."

Q.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나.

"코로나19 첫해에는 좀 당황했지만 직원들이 오프라인으로 기획됐던 교육·세미나·모임 등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업무와 관련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갔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진행되던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지역 거주 여성들이 온라인 전환된 프로그램에 쉽게 참여할 수 있어 더 좋은 결과를 내기도 했다. 온라인 콘텐츠 활성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2년차가 된 작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3년간 지원되는 경력복귀 사업의 대상자분들이 2년차, 3년차에 참여를 중단하려는 비율이 굉장히 많이 나타났다. 학교를 가지 않는 자녀들을 돌봐야 하니 전문직 여성들도 버티기 어려진 것이다. 통상 3~5% 비중이었던 중단 비율이 작년 하반기 25% 수준으로 급증했다. 우리가 아무리 신기술을 학습하게 하고 좋은 직장을 컨설팅·매칭해도, 무슨 일을 하든 여성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에서 큰 한계를 느꼈다. 아이를 맡는 책임을 누가 나눠 져 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는 거구나 싶었다. 이 문제는 범부처 협업이 필요한 것이지, 어느 한 부처의 일로 풀릴 수 없지 않나 생각했다. 다만 이 현실을 껴안고 갈 방법에 대한 필요성은 논의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님이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아, 과학계의 돌봄 문제를 어떻게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연구를 하고 있고, 고용노동부의 긴급돌봄과 같은 프로그램을 과기부가 (과학기술인을 위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Q. 현 정부에 할 말씀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여성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사회 차원에서 여성 과학기술·공학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는 것이 큰 일이었다고 본다. 청와대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성의 비율을 파악하는 등 그간 이렇게 공공연하게 정부 차원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부각시킨 적은 없었다고 본다. 이는 마치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에 다음 정부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본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은, 한국이 글로벌 트렌드를 꼴찌 자리에서 뒤쫓기보다는 이 흐름을 앞장서 이끌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수적으로 많은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을 활용해 더 성장할 수 있다. 여성인재들의 역량이 산학연에서 충분히 발휘되게 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분야에 여성인재가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좋겠다. 초중고교 학생의 신기술 습득과 디지털 격차를 좁혀 사회 전체의 디지털역량을 높이는 것이 굉장히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Q. 올해 재단이 역점을 둘 업무는.

"지금까지는 정책 기반의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이었다. 재단의 사업으로 몇 천 명을 지원했고, 교육 프로그램으로 몇 만 명이 학습을 했다는 얘길 했다. 올해부터는 어떤 사업을 하는 조직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제안하려고 한다. 세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고 어떤 성공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얘기하는 정책연구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과기인 이슈의 사회적인 관심과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신설된 정책연구센터와 외부의 연구자들이 함께 장기적인 관점에서 심층연구를 수행하고 이 분야의 이슈를 선도할 계획이다."

Q. 비중있게 추진할 사업은.

"2~3년 전부터는 전공이 아니라 신생 분야를 비롯한 새로운 산업의 문제를 푸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하는 이슈가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다양한 신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올해는 4000~5000명 규모의 신기술 분야 인재양성을 계획하고 있다. 여성 현직자의 경력 발전과 리더급 인재로의 성장 비중을 확대할 멘토링, 네트워킹,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있는데 2030년까지 100만 여성과기인 네트워크 구축이 목표다. 앞으로 신기술 인재 배출을 위해 경력복귀 희망자에게 신기술 습득을 돕는 사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Q. 임기가 곧 끝나는데, 소회를 밝힌다면.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첫 1년은 재단의 상황을 파악하며 배웠고 두 번째 해에야 내 아이디어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 3년째에야 제대로 일을 시작했다. 이사장의 임기 3년이 짧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지금 실감한다. 초반에 하기로 마음먹은 'W브릿지(여성과기인 육성지원포털)' 개장과 신기술 교육프로그램 오픈 등은 실무적으로 다 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시점이라 아쉬움이 크다.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다고 말하긴 어렵고, 글로벌 성공사례로 연결되게 하려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 큰 브랜드나 기업의 여성 CEO, 여성 노벨상 수상자나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연구자 등이 나오려면, 이런 역량있는 여성 인재가 나오려면 결국 학계, 산업계, 연구소, 어디서건 여성의 모수가 커져야 한다."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 안혜연 WISET 이사장은 어떤 사람?

안혜연 WISET 이사장은 1994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IT기업과 대학 IT관련 학과 교수, 산업협회 임원을 역임한 IT 학계·산업계 베테랑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수학(학사), 전산학(석사),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수리물리과학부 겸임교수(2008~2011년), 컴퓨터공학과·사이버보안학과 자문위원(2015~2018년)을 맡았다. 시큐어소프트 부사장, 파수닷컴 부사장직을 거쳐 2019년 WISET 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19년부터 세계여성이사협회(WCD Korea) 비상임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정부의 IT국제표준화전문가(2001~2005년)로 선정됐고, 여성정보기업인상(2002년), 정보보호산업인상(2013년), ISLA국제보안전문가상(2015년), 여성정보인대상(2019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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